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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한의원이야기

화폐상 습진 기고글을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생기한의원 강남역점의 박치영 한의사입니다.

 

한의학 매거진 'On Board' 여름호에 소개된 화폐상습진 기고글을 소개해드립니다.

 

 

 

 

첫페이지를 캡처해보았습니다.

 

 

 

 

두번째 페이지입니다.

 

 

 

 

마지막으로 세번째 페이지였습니다. 아래글은 매거진에 실린 전문입니다.

 

 

 

좋은 한의사가 되고 싶었다. 좋은 한의사란 무엇일까? 그 고민의 역사가 어느덧 20년의 시간이 되어가는 지금, 여전히나는 좋은 한의사가 되기 위해서 궁구한다. ‘좋은 한의사’란 어떤 한의사일까? 잘 모르겠다. 아직 ‘좋은 한의사’에 대한 정확한 이미지가 내 머릿속에 정립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좋은 환자’, ‘착한 환자’라는 단어에는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하나의 이미지가 있다. 전신의 화폐상습진으로 심신이 초췌한 상태에서 나를 찾아왔던 그녀. 피부가 정상적으로 돌아오면 꼭 연애를 하고 싶다고 수줍게 이야기하던 그녀. 그녀는 참으로 선한 사람이었다. 그 흔한 컴플레인 한번 없었던 환자였다.


피부를 치료하는 입장에서 화폐상습진이라는 피부질환은 아토피 피부염 이상으로 관리가 쉽지 않은 난치성 피부질환이다. 극심한 가려움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진물이 온몸에서 마치 수도꼭지를 틀어 놓은 것처럼 줄줄 흘러나오기 마련이다.

안타깝게도 화폐상습진 환자 중 초기에 한의학적인 피부 치료를 선택하는 사람은 무척 드물다. 대부분은 서양의학적 치료를 받다가 차도가 없어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한의원 문을 두드린다. 오랜 기간 스테로이드제로 치료를 받다가 오신 화폐상습진 환자분들은 리바운드 반응이 격렬하고 치료하는 과정에서 2차감염도 빈번하기 때문에 한의학적인 피부 치료 자체가 오해받거나 공격받기 십상이다. 사전에 충분히 고지를 함에도 불구하고 스테로이드 연고를 끊어서 나타나는 반응을 한의학적 치료 효과의 부작용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녀 역시 5년간 동네 의원과 지역의 대학병원을 전전하면서 스테로이드 치료를 받다가 한의원에 찾아온 경우였다. 초진 때 선해 보이는 눈망울에서 금세 눈물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으로 꺼낸 애처로운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여기가 마지막이에요.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아니나 다를까 치료 초기부터 격렬한 리바운드 반응이 시작되었다.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 점점 더 심해지는 피부를 보면서 나는 ‘조금만 견디자’라는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내가 미안해할 이유는 전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일반적인 환자들과는 다르게 전혀 원망과 증오가 없는 그녀를 보면서 내 자신이 오히려 더욱 초조해졌다.


‘아니 이 사람은 왜 나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을까?’
‘이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치료를 중단하겠다고 하는 건 아닐까?’

 

보통 사람과 같지 않은 그녀의 말과 눈동자를 보면서 나는 오히려 감사함보다는 낯선 당혹감을 느끼곤 했다.
한 달의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의 피부는 점점 정상적으로 회복되어갔다. 화폐상습진의 경우에 리바운드 반응은 치료 시작 한 달을 전후로 회복되는 경우가 많다. 바쁜 한의원이다 보니 약속 시간을 지켜드리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예약 시간을 1시간을 넘기고 진료를 받거나 어떤 날은 2시간을 기다려야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어떠한 불평이나 불만의 표현이 전혀 없었다.


“원장님 저 휴직 중이잖아요.”
“원장님이 힘드셔서 어떡해요."

 

모든 직원들이 느꼈다.
한 달, 두 달, 세 달 꾸준히 치료를 받으면서 그녀는 점점 호전되어 갔다. 그녀는 주 1~2회씩 꾸준히 내원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그녀의 다리 주변으로 선홍색의 발진이 올라오면서 부종이 점점 심해져갔다. 2차감염이 시작된 것이다. 2차감염도 가벼운 2차감염이 아니었다. 코끼리 다리처럼 부은 그녀의 다리. 그녀는 피부 증상이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는 건 아닌지 무척 불안해했다. 하지만 그 불안함에 나에 대한 공격성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정말 천성이 선한 사람이었다.

 

대부분 2차감염을 겪는 화폐상습진 환자들은 자기 탓을 하기보다는 의료진에 대한 원망과 증오 등의 심리적인 방어기제가 먼저 작동하기 마련인데 이분에게서는 그런 것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랜 대화 끝에 그녀는 대학병원에 입원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그녀보다는 그녀의 가족이 더 강력하게 입원 치료를 주장했다. 대학병원에 2주간 입원한 후에 퇴원한 그녀는 2차감염이 거의 회복되어 있었고 다시 치료를 열심히 이어나갔다.


화폐상습진 환자분들이 심각한 2차 감염을 겪다보면 기존에 한의학적인 치료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던 분들도 부정적으로 바뀌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모습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치료를 시작하고 8~9개월의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를 괴롭히던 화폐상습진은 어느새 과거의 일이 되었다. 그녀는 아주 오랜만에 깨끗한 피부와 가려움증이 사라진 뽀얀 살결을 느끼면서 단잠을 잘 수 있었다. 치료를 종료하는 날 그녀에게 진심으로 축하를 드렸다. 당신처럼 선한 환자분은 앞으로도 다시 뵙기 어렵지 않을까 라는 말을 건넸다. 그리고 이후에 좋은 분 만나서 결혼을 하신다면 꼭 청첩장을 보내달라고, 그리고 나 역시 선한 한의사가 되도록 노력해 보겠노라고 말했다.

 

그 이후에도 예민한 환자분들의 컴플레인에 시달릴 때 가끔씩 그녀가 떠올랐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점심을 먹고 왔더니 편지 한 통이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그녀의 청첩장이었다. 청첩장을 열어보니 선한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마음 깊이, 진심으로 그녀의 행복을 빌었다.

 

 

 

 

한의학 매거진 'On Board' 여름호 표지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