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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한의원 진료실/아토피

아토피 치료 기고글을 올려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생기한의원 서초점 박치영 한의사입니다.

 

최근 기고한 아토피 치료 스토리의 내용을 올려드립니다.

On Board편집국장님께 허락을 득하고 제 개인 블로그에

올려도 괜찮다고 하셔서 이렇게 올립니다.

 

 

 

 

 

 

아토피 치료 스토리를 기고한 온보드 표지입니다. 

 

 

아래는 전문입니다

 

 

喜怒哀樂 피부진료실 

 

 

 

 

벌써 10년도 더 지난 과거의 일이다.


공보의가 끝나자마자 바로 넓은 평수를 빌려 대전 판암동에 개원했고, 배독(排毒) 치료의 힘을 믿고 까다로운 질환
인 아토피 진료를 시작했다. 당시의 나는 피부 치료에 있어서만은 열정 그 자체였다. 그 열정의 일환으로 이른바
‘배독시설’이라 할 수 있는 반신욕실과 사우나실을 한의원에 갖추었다. 한의학의 치료 팔법(八法) 중 하나인 한법(汗
法)을 적극적으로 활용해보기 위해서였다. 추운 겨울날에도 그 열기를 유지해야 했기에, 휴일도 잊은 채 한의원에
매일 출근했다. 동기들과 지인들이 원장인 나를 ‘찜질방 주인’이라고 불렀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소년이 엄마의 손에 억지로 이끌려 머뭇거리면서 진료실로 들어왔다. 낯설고 어색해하면서도
온몸에 경계감을 숨기지 않았다. 나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동경이’에 대한 첫인상은 그랬다.

동경이는 팔꿈치 안쪽과 오금 부위에 습진 양상이 나타나는 전형적인 아토피 피부염 환자였다. 중3, 반항기 가득한
눈에는 나를 왜 이런 후진 동네로, 그것도 한의원으로 끌고 왔는지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다. 그 때의 나는, 그 때의
눈빛을 바로 압도해버리기엔 아직 연륜이 부족했다.

 

그렇게 우리는 진료실 작은 공간에서 굴곡진 인연의 서막을 열었다.

동경이는 아토피 치료 환자 중에서도 만만하지 않은 상대였다. 스테로이드 연고와 보습제 사용을 가급적 제한하는
나의 치료 방식에 대해 동경이의 저항이 거셌다. 스테로이드 도포를 중단하면서 나타나는 리바운드(re-bound) 반응
도 다른 환자들보다 무척이나 심했다. 팔과 다리의 습진은 기존 환부 크기의 몇 배 이상으로 퍼져나갔고, 첫 내원
시 증상이 없었던 얼굴과 목에도 습진이 나타나기 시작되면서 동경이는 불안해하고 예민해졌다.


 

하지만 나를 전적으로 의지하고 신뢰해주셨던 동경이 어머님은 스테로이드제와 보습제를 온 집안에서 과감하게 없
애버리셨다. 나에게 아토피 치료를 의지한 것이 마음 한편으로 너무나 고마웠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 치료를 해주고 싶었고, 동경이를 매일 한의원으로 불러냈다. 건조하고 가려운 증상 때문에 수시로 보
습제를 발랐던 동경이도 처음엔 아주 힘들어했지만 조금씩 적응해가기 시작했다.

 

 

 

 

 

 

 

 

 

 

한가지 내가 적응이 안 되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동경이의 질문세례였다. 동경이는 올 때마다 쉴 새 없이 질문을
던져댔다. 꽤 영민한(?) 녀석이었다. 동경이의 진심 어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무척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동경이는 오전 수업만 받고 나서 오후에는 아토피 치료를 위해 한의원으로 왔다. 반신욕 10분, 사우나 30분, 휴식
10분, 그리고 다시 반복… 이 배독 치료를 하루 3번 정도 반복했으니 보통 3~4시간을 한의원에 머무른 셈이다. 당
시의 직원들은 베테랑 아줌마들이었는데, 모성이 발동한 것인지는 몰라도 따뜻한 밥까지 직접 챙겨주면서 힘들어
하는 동경이를 다독거렸다. 밥의 힘이 강력했던 것인지, 식구(食口)가 원래 이런 것인지… 나와 동경이, 그리고 직원
들은 한의원에서 함께 밥을 먹으면서 조금씩 친해져 갔다. 한의원이란 공간 속에서 하나의 빅 패밀리가 된 것이다.

해를 넘겨 봄이 가고 여름이 찾아왔다. 여름은 아토피 치료의 적기이다. 이 시기에 나는 치료에 박차를 가하기 위
해, 동경이에게 좀 더 많은 것들을 요구했다.

 

 

 

 

 

 

피부가 조금씩 좋아지고 아토피 증세가 회복되는 동시에 마음의 벽도 서서히 허물어졌다. 동경이는 내가 부탁하는
일을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받아들였고, 또 열심히 따라주었다.

 

아토피 치료를 시작한 지 거의 1년의 세월이 지나갈 무렵, 드디어 우리는 종착지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우
리는 함께 식사할 기회가 없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대전 판암동에서 대전 둔산으로, 그리고 다시 서울로 자리를 옮겼다. 비록 대전에서는 멀어졌지
만, 종종 주변의 지인들을 통해서 동경이가 대학교에 진학했고, 쉐프를 꿈꾸는 청년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얼마 후엔 동경이가 해병대에 입대해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아토피로 인해
그토록 괴로워했던 소년이 해병대까지 지원하다니… 그리고 그 감동적인 사연의 주인공이 바로 동경이라니…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잊고 살던 어느 날, 한 건장한 청년이 스포츠머리를 하고 나를 찾아왔다. 다름 아닌 동경이었다! 해병대 휴
가 중에 서울에 들러 나를 찾아온 것이다. 너무나 의젓해진 동경이의 모습에 무척 놀랐다. 그때 동경이랑 처음으로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참으로 오랜만에 동경이와 밥을 먹었다. 오래전 판암동에서 식구(食口)가 되었던 그때
의 추억을 떠올리며……